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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편] 무신론자 중 불교를 믿는 사람들
글쓴이 | 맹정훈
작성일 | 2017.02.13

[4] 무신론자 중 불교를 믿는 사람들

[1] 불교의 정의

 

1. 불교란?

 

         불교(佛敎)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란 의미인데,

         붓다께서 글로 남기신 것이 하나도 없어, 어디까지가 붓다의 말씀이고

    어디까지가 제자들의 사견인지가 명확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2. 인간 · ()

 

    소승불교에서는 붓다를 지혜로운 인간으로 보았고, 대승불교에서는 붓다를

                          神으로 보았습니다. (견해차가 있음)

            전자는(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철학이고 후자는 종교입니다.

 

     이점에 대해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예컨대 같은 절대자를 상정()

     하지는 않으나 인간의 인식능력 범위를 초월하는 교리를 담고 있는 경우에는

       (철학종교라는 용어를 만든 후) ‘철학종교로 규정하는 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 유교는 철학소승불교는 철학종교대승불교는 종교로 분류)

 

(1) 소승(小乘)불교 · 대승(大乘)불교

(: 수레승 / 소승 : 작은 수레 / 대승 : 큰 수레)

 

       붓다가 입멸한 후 2백여 년이 흐르자, 계율을 엄수하자는 보수파와 시대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해석하자는 진보파로 갈림.

       진보파의 세력이 점점 커지자 보수파에서는, 진보파는 불교가 아니라고 선언함.

       이에 열 받은 진보파에서는,

          ‘억조창생(億兆蒼生: 수많은 백성)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가!

       작은 수레(소승)에 소수의 출가(出家)수행자만 올라타서 소수의 해탈만을 도모하는

       것이 어찌 붓다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지

       않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큰 수레(대승)에 태워서 다 함께 갈 것이다, 이 길을!!

 

       이런 식으로 진보파에서 소승불교라는 명칭을 만들었지만 초기 불교(근본불교)

       쪽에서는 소승이라는 용어를 인정하지 않음.

       그리고, 불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래되었을 때는 소승불교도 함께 왔으나 지금은

       소승불교는 재가불교(在家佛敎 : 출가하지 않은 신자들이 믿고 따르는 불교)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이고 출가불교(出家佛敎)는 거의 전부가 대승불교임.

 

(2) 철학 (哲學)

 

       철학이란, 넓은 의미로는 공통분모를 찾기 어려운 인간들의 잡다한 생각이고,

       좁은 의미로는 인간들의 잡생각, 잡소리 중에서 중요한 것에 대해 바른 생각은

       무엇이고 틀린 생각은 무엇인지를 구분해 내기 위한 노력과 그러한 노력 끝에

       얻어진 바른 생각에 붙여진 이름.

 

       전자는 개또철학이라는 용어가 적당하고 후자는 바른철학혹은 그냥 철학

       이라는 용어가 적당함. 후자, 좁은 의미의 철학이란 달리 말하면 언어분석

       내지 개또철학의 진위분석을 의미함.

 

[2] 불교의 특징

 

[특징 1] 형이상학적 논리의 배제

 

          (1) 형이상학(形而上學)은 우주만물의 존재원인, 존재이유 등과 같은 본질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임.

 

          (2) 어느 날, 붓다의 제자가 붓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스승님 !!

            우주는 시간적으로 영원합니까? 끝이 있습니까? 그리고,

            우주는 공간(장소)적으로 유한합니까? 무한합니까? 그리고,

            신체와 정신은 하나(이기일원)입니까? 다릅니까(이기이원)?

            그리고, 해탈한 부처는 죽은 후에도 계속 존재합니까?

            소멸합니까?

 

        다음은 붓다의 답변입니다. (요약)

 

            '어떤 사람이 독화살에 맞았다.

             그 사람은 일단 독화살부터 뽑고 보는 것이 현명한 처사인가

             아니면 독화살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왔고 독성분은 무엇이고

             누가 쏘았는지 등등을 알아보는 보는 것이 현명한 태도인가,

             그리고

             이 질문이 그대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공.

             그러한 질문은 고통을 없애거나

             열반과 평안에 이르는데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답하지 않는다.

 

        (3) 붓다는 이처럼 '형이상학적 질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기(無記:답하지 않음)로 일관하셨습니다.

 

        無記의 이유로는

        형이상학적 질의는 인간의 인식능력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답할 수 없음.

        ② 희론(戱論 : 무의미하고 무익한 이론. 말장난)에 불과해서 질문 자체

            성립되지 않기 때문임.

            등등이 제시되고 있는데, 주로 번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4) 朝聞道 夕死 可矣

 

         그러나 대진리(형이상학적 의문에 대한 모범답안)에 관한 문제는 공자께서도

            ‘아침에 대진리를 들으면(알게 되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

             (朝聞道夕死可矣 조문도/석사/가의)’라고 말씀하셨고

 

            ‘파우스트박사도 그것을(대진리) 알기 위해 주저 없이 자신의 몸을 내 던졌고,

 

         붓다의 제자들도 그것을 위해 살다가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대진리

         애타게 찾다가 가장 지혜로운 스승님께 해답을 구한 것인,

            붓다께서 이를 희론으로 간주, 무기하신 것으로 그렇게 추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한 추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형이상학적 질의는 인간의 인식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답하지 않았다는

         추정 역시 인간의 인식능력 범위를 넘나드는 붓다의 지혜를 간과한 억견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게 그렇다고 한다면, 그렇게도 중차대한 질의에 대해 붓다께서 無記하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건 이렇습니다. 사실 제자들의 질의에 대해 붓다는 이미 답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무엇일까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 그대들의 질문은 이 우주 삼라만상이 모두 다

              실재(實在: 실제로 존재함)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질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은 무명(無明: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무지)으로인한

              착각이고 대진리는 제법무아 이다.

              (諸法無我: 모든 존재는가상(假象)이고  실재하지 않음)

              그러니 생각해 보아라

               諸法無我인데, 영원이 어디 있고, 끝이 어디 있고, 무한이 어디 있고

               유한이 어디 있고,

               이기일원(理氣一元: 존재하는 것은 물질(신체) , 정신은 없음)

               어디 있고,

               이기이원(理氣二元: 신체와 정신이 별개로 존재함)이 어디 있으며

               태어남이 어디 있고 죽음이 어디 있겠느냐,

               모두 다 망상이로다, 망상!!’

 

          자, 붓다께서는 이렇게 답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 어째서, 그렇게 無記

          일관 하셨을까요?

 

          길게 얘기하면 한 없이 길어질 것이므로, 결론 중심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범부(凡夫)들은 제법무아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최소단위가 아무리 작아도, 다시 말해 최소입자가

          무()에 가까울 정도로 극미(極微)해도 그것은 가 아니고 (실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붓다의 제자들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상황이 이와 같은데 제법무아를 항상 그리고 계속해서 강조하다 보면 상당한

          혼란이 초래될 것이 자명하므로 이에 붓다께서는 사안에 따라, 때로는

                                        無記의 방법을 통해

          혼란을 줄이고 시간의 흐름에 맡겨 서서히 그리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쪽을

          선택하신 것이 아닌가 그렇게 추정을 해 봅니다.

 

[특징 2] 무아 (無我)

 

(1) ()

 

          일반적으로 , 이 우주상에 존재하는 온 삼라만상 중에서 다른 존재

          구별되는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자기자신을 말하는 것이나,

              無我서의 는 실체 내지 본질을 의미합니다.

 

(2) 제법무아 (諸法無我)

 

           우리는 상식적으로 그리고 직관적으로 나와 온 우주 삼라만상이 실재(實在)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 없이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붓다께서는 그것은 범부들의 미혹일 뿐 진실이 아니고 이 세상은 인간이건

           사물이건 간에 구분 없이 그 어떤 것도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제법(諸法) : 일체의 모든 존재.

                        무아(無我) : 실체가 없음.

                        실재(實在) : 실제로 존재함.

                        범부(凡夫) : 잘 깨닫지 못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미혹(迷惑) : 착각. 망상. 왜곡.

 

(3) 그렇다면 만유의 실상은 무엇일까요?

 

          근원을 알 수 없는(다시 말해, 근원에 대해 설명이 없는, 본래부터 작용하던)

             어떤 가상(假象)의 원인과 조건에 따라(연기. 연기론) 역시 假象오온(五蘊)

         일시적으로 결합하여 인간과 물질 및 인식작용(마음)이라는 허상(虛像)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

 

         다시 말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假象이고 따라서 일체가 가상(假相)이라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    가상(假象) : 객관적 실체(實體)가 없는 주관적 환상의 양태(樣態).

                 연기(緣起) : 인연연. 말미암을연 / 일어날기. 시작할기

                 양태(樣態) : 상태. 양상. 모습. 모양.

                 허상(虛像) : 실제로는 없는 것인데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양태.

                                 반대말은 실상(實相).

                  가상(假相) : 헛되고 거짓된 양태.

 

                  오온(五蘊) : (쌓일온. 모일온).

 

              ① (. 인간의 신체를 포함한 모든 물질)

              ② (. 대상물에 대한 직관적인 반응)

              ③ (. 대상물에 대해 분석하고 추리하는 지각작용)

              ④ (. 대상물에 대한 마음의 작용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

              ⑤ (. 대상물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작용)

 

                  이 중에서 은 물질계, ②③④⑤는 정신계로 번 이하는 대체로

                  마음의 작용을 의미함. 불교에서는 오온도 無我라고 함.

 

[특징 3] 일체개고 (一切皆苦) (온통일,전부체,다개,괴로울고)

 

(1) 의 종류

 

             불교에서는 우리네 인생살이 일체를 모두 다 로 보았는데,

             다음은 의 종류로 제시된 여덟 가지 양태입니다 (8)

 

              ① (. 태어남)

              ② (. 늙어감)

              ③ (. 병듦)

              ④ (. 죽음)

              ⑤ 愛別離苦 (애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

              ⑥ 怨憎會苦 (원증회고.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는 고통)

              ⑦ 求不得苦 (구부득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⑧ 五取蘊苦 (오취온고. 집착으로 인한 번뇌와 고통)

 

(2) 의 원인 (五取蘊)

 

         근원을 알 수 없는 오온(五蘊)의 일시적인 결합으로 인간과 사물, 그리고

         인식(마음)이라는 허상(虛像)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결국 나()라는 존재도

         진아(眞我 : 실체(實體)로서의 참 나)가 아니고

         가아(假我 : 가상(假象)인 오온의 일시적인 결합으로 생겨난 거짓 존재)

         즉 허상(虛像)인 것인데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虛像을 실상(實相)으로

         오인, 이에 집착하기 때문에 원초적 본능 등등의 일체개고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불교에서 말하는 오취온고가 본질이고, 다른 일곱 종류의

             ‘오취온(허상에 대한 집착)’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므로, 불교상의 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인생고와는 본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3) 에서 벗어나는 길

 

         苦는 아집(我執 :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이에 집착하는 )에서

         오는 것이므로, 아집에서 벗어나면 곧 에서 해방이 되는 것입니.

         아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성제를 이해하고 팔정도를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4) 사성제 · 팔정도

 

                              1) 사성제(四聖諦 : 성스러울성. 진실제, 깨달을제)

 

           사성제란, 네가지 성스러운 불교상의 진리를 말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고성제 (苦聖蹄)

 

           만유(萬有)는 모두가 다 허상인데 사람들은 이를 실상으로 잘못 알고 이에

           집착하고 있는 바 그 자체가 라는 불교상의 진리.

 

집성제 (集聖諦)

 

          苦가 발생하는 원인을 밝힌 것으로,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집착갈애라는 불교상의 진리.

 

          갈애(渴愛 : 목마를갈. 사랑애, 물욕애)란 목마를 때 애타게 물을 찾듯이 색욕,

              재물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의 오욕(五慾)에 애착하는 것을 말함.

 

멸성제 (滅聖諦)

 

          사성제를 깨닫고 팔정도(八正道)를 실천하여 모든 집착과 갈애에서 벗어나게 되면,

          사랑과 미움 등의 감정이 사라지고 온갖 번뇌와 망상 등도 사라져 드디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인 열반적정(涅槃寂靜)에 이르게 된다는 불교상의 진리.

 

도성제 (道聖諦)

 

           苦를 끊고 열반적정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각자마다 행하여야 할 수행 준칙을

           밝힌 것으로 구체적으로 팔정도를 제시함.

 

                                   2) 팔정도(八正道 : 여덟 가지 올바른 수행)

 

정견 (正見) : 바른 깨달음

     ② 정사 (正思) : 바른 생각

     ③ 정어 (正語) : 바른 언어

정업 (正業) : 바른 생업

정명 (正命) : 바른 생활

정정진 (正精進) : 바른 노력

정념 (正念) : 바른 새김

정정 (正定) : 바른 집중

 

[특징 4] 윤회 (輪回) (바퀴륜, 번갈아륜 / 돌회)

 

(1) 윤회의 의미

 

          윤회란, 불교 교리의 하나로,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은 그 업()에 따라서 죽음 이후

          또 다른 세계에 태어난다고 하는 사상입니다.

 

(2) 육도 윤회 (六道輪迴)

 

           또 다른 세계는 다음과 같이 여섯 종류입니다.

 

            ① 지옥 (地獄) : 생체실험을 감행한 인간 악마 멩겔레(독일)’다케다 노미야

               (일본)’ 같은 놈들이 가는 곳.

 

       ①()부터 계까지에 있는 생명체의 총 숫자는 불변의 숫자로 보기 쉬우나,

       해탈하고 열반에 들게 되면 윤회의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결국 인간을 위시한

       모든 생명체의 총 숫자는 조금씩 줄어들게 됨.

         그리고 ①②③④번의 세계는 그야말로 초초만원이라 운명의 그날, 재수가 좋으면 

       ②③④⑤번으로, 다시 말해 한 등급 아래로 갈 수도 있을 것임.

 

             ② 아귀 (餓鬼) : 놀부 같은 자가 가는 곳.

 

             ③ 아수라 (阿修羅) : 헐뜯고 싸우기 좋아하는 자가 가는 곳.

 

             ④ 축생 (畜生) : 짐승 같은 놈, 짐승만도 못한 놈이 가는 곳.

 

             ⑤ 인간 (人間) : 불도(佛道)는 모르나, 하늘을 우러러 크게 부끄럼 없이 살다 간

                 사람들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게 되는데,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 직전에,

                        이미 망각의 강을 건넜기 때문에 전생을 기억하지는못함.

                        즉 자기동일성은 원칙적으로 상실이 됨.

                 그리고,

                 인간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인간은 점점 더 멸종

                 위기로 내 몰리다가 마침내 멸종해 버릴 가능성이 상당했음.

                 그렇게 되면, 유전육도의 대원리가 깨지기 때문에 분류기준이 바뀌어 어느 날

                 부터 인간은 그저 웬만하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게 되었고

                 그리고, ∼④계에서도 사면받은 후 인간계로 돌아오는 사례가 점점 더 많아

                 지는 것으로(인구증가) 그렇게 추정이 .

 

             ⑥ 천계 (天界) : 아직 열반에 이르지 못한 성인이 가는 곳.

 

(3) 윤회는 실상(實相)인가, 방편(方便)인가?

 

                         이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견해차가 심합니다.

              ① 붓다는 윤회에 대해 언급한 바가 없다.

                  초기 경전에 기록된 윤회는 후대에 편집된 것이다.

              ② 붓다는 현세적인 가르침만 펼치셨고 내세에 대해서는 무기(無記: 답하지 않음)

                  하셨다. 경전에 나오는 윤회는 방편일 뿐이다.

                        (방편 : 어떤 목적을 위해 꾸며낸 이야기. 예컨대, 너 그렇게 살면 지옥 가!

                           윽 무서라, 조심해야지)

              ③ 제법무아인데 누가 윤회한다는 말인가! 윤회는 없다.

                   윤회는 무아론에서 벗어난 외도의 사변이다.

              ④ 제법무아래도 연기적(緣起的) 자아는 있다. 연기적 자아가 윤회를 계속

                   하는 것이다 (허상의 상태로 계속 이어지는 윤회)

              ⑤ 고정된 나는 없지만 변화하는 나는 있다. 이 변화하는 내가 윤회의 주체이다.

 

           이러한 주장 중에서 현재의 정설은 간단명료하게 윤회는 없다입니다.

           이 정설에 의하면, 앞서 말한 육도(六道)에 관한 얘기는 모두 다 소설, 혹은 방편이

           되겠습니다. (방편도 소설).

 

[특징 5] 해탈과 열반

 

(1) 의미 () 해탈 (解脫)

 

            解脫(풀해, 깨달을해, 벗어날해 / 벗을탈, 면할탈)이란,

 

            사성제(불교상의 네가지 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팔정도를 실천하여, 일체개고

                 에서 벗어난 상태, 다시 말해 ()에서 해방된 상태를 말합니다.

 

            해탈과 다음에서 설명하는 열반은 일반적으로는 비슷한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해탈에는 단계가 있고, 모든 단계의 해탈이 모두 다 열반과

           등식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양자를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주장이 있습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열반과 등식이 되지 않는 단계의 해탈은, 혼란을 줄이기 위해 해탈이라는 용어

           대신 예컨대 수행 제1과정’ ‘수행 제2과정’(완전한 해탈을 위한 수행과정으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완전한 해탈을 이룬 경우에만 해탈이라는 용어 사용) 등으로

           그 명칭을 부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 열반 (涅槃 · 니르바나)

 

         涅(개흙녈)(쟁반반. 두음법칙에 따라 열반)은 범어(梵語) nirvana음역(音譯)

            이므로 한자의 의미와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원어 니르없음의 의미이고 바나불어 끄다의 의미이므로 니르바나

         불어서 꺼진 상태, 다시 말해 완전히 해탈한 후 그 결과로 일체의 번뇌가 없고

         적정(寂靜 : 지극히 고요함)함이 유지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해탈에는 해탈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 필요한데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완전한  

         해탈에 이른 그 상태가 곧 열반입니다.

 

(2) 생전열반 · 사후열반

 

         실체가 윤회하든, 연기적 가아(假我)가 윤회하든 간에 윤회를 인정하는 경우에는

         열반을 죽은 후 다시 태어나지 않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하나,

            이러한 견해는 대체로 정설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고 생전열반만 인정하는 것이 

         정설로 보여집니다.

 

(3) 대승불교의 상락아정

 

         대승불교에서는 초기불교와는 달리, 열반에는 상락아정의 네 가지 특성이 들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흡사한 개념입니다.

 

        ① () : 열반에서의 삶은 무상(無常 : 영원한 것은 없음)이 아니고 영원함.

        ② () : 열반에서의 삶은 고통이 아니고 기쁨과 환희가 넘침.

        ③ () : 열반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나는 가아(假我)가 아니고 진짜 나임.

                                (진아. 眞我).

        ④ () : 열반에서의 삶은 청정하고 안락하고 밝고 깨끗함.

 

        대승불교의 이와 같은 주장은 사성제의 기본논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라

        그 비판이 치열합니다.

 

(4) 생전열반이 정설이라면 죽음 그 이후는?

 

() 무기(無記)

 

        붓다는 죽음 이후의 삶과 같은 형이상학적 질의에 대해서는

        무기(無記 : 설명하지 않음)로 일관하셨습니다.

 

        다만, 제자들의 계속되는 질문에, 열반에 대한 설명으로 추정이 되는 말씀을

        하셨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 그곳은

 

          땅도 없고, 물도 없고, 불도 없고, 바람도 없고,

          (空)세계도 없고,

          인식작용도 없고, 비존재도 없고, 지각(知覺)도 없고,

          지각이 없는 것도 없고,

 

          이승도 없고, 저승도 없고, 태양도 없고, 달도 없고,

 

          인과(因果)도 없고,

          죽음도 없고, 태어남도 없고,기반(基盤)도 없고,

              유전(流轉)도 없고,

          대상(對象)도 없고 고뇌도 없는 곳이다

 

        무슨 의미인가요?

 

           ‘도 아니고 도 아닌 그 어떤 상태로 영원히 거()한다는 의미이다

        동양철학 교수님의 해석입니다.

 

        그러나, 생도 아니고 사도 아니라면 이는 모순이 되는 것인데, 모순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가능하지 않으므로, 이 해석은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라

        또 다른 문제를 야기 시킬 뿐입니다.

 

          ‘시공간에서 자연적으로 모든 현상이 완벽하게 안정된 상태가 바로 열반이다

        공부를 많이 했다는 어느 불교도의 해석인데, 글쎄요,

        본인의 해석에 대해 본인 자신은 과연 얼마만큼이나 이해를 하고 있을지

        그것이 의문입니다.

 

() 불립문자

 

         어떤 분은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말씀하십니다.

 

              '나는 대진리(인간과 우주 삼라만상의 존재근기, 존재목적 

               등과 같은 본질문제에 대한 바른 해답)를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언어로는 표현(전달)할 수가 없다.

               대진리는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불립문자의 내용은 이와 같은 것인데, , 그런데 그게 과연 그렇습니까?

 

         알기는 아는데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존재합니까?

         이 문제는 긴 설명을 요하는 문제인데 지금 그럴 여유가 없으므로 간략하게

         결론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알기는 아는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언어의 부재(不在)는 인식의 부재이다

            ‘알기는 아는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하는 그 말은, 소아병적 사고(思考)

         기인한 자기 기만행위이다

 

() 판단중지

 

       이미 설명 드린 바와 같이 신학(神學)에는 예정론과 자유의지론이라는

       아킬레스건있는데,

         불교에서는 좀 전에 설명한 열반에 대한 말씀이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겠다

       는 생각입니다.

 

       예컨대, ‘땅도, 물도, 인식작용도, ()의 세계도, 비존재도, 지각도 없는 상태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우리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나요?

 

       이런 경우에는 판단중지가 최선입니다.

 

       붓다(예수)의 말씀에 더하지도 감하지도, 해석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키려고 눈물겹게 노력하지도 말고, 말씀 그대로를 그냥 믿고 따르는 ,

          그것이 판단중지이자 동시에 신자(信者)들이 지켜야 할 불문율(不文律) 입니다.

 

() 죽음 그 이후는?

 

       불교논리에 의하면, 해탈하고 열반에 이른 자는 사는 동안 적정(寂靜)삶을 살고,

       깨닫지 못한 범부들은 일체 고()의 삶을 살게 되는데,

         그렇다면 죽음 그 이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열반에 이른 자는, 죽음과 함께 오온(五蘊)이 해체되어 오온이 결합하기 전의 상태인

       절대무(絶對無, 본래의 자리)의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가아(假我)를 인정할없는 범부들은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죽은 후 원자로 환원되어

       또 다른 존재의 부속품이 될 수도 있겠지만 또 세월이 흐르면 언젠가는 원자까지도

       파괴가 되어 결국에는 영원히 허허로운 對無의 세계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 불교는 허무주의인가?

 

) 깨달은자

 

       불교논리로는(깨달은 자가 볼 때는), 생로병사가 본래 실재하지 않는 것이,

          나도 실재(實在)하지 않는 것이고,

         그저 인연 따라 잠시 잠깐 꿈 한번 꾼 것처럼

       가상(假象)의 세계에 잠시 잠깐 머물다가 인연이 다 하면

       의 세계인 본래의 자리

       돌아가는 것이니,

 

         이와 같은 진리의 세계에서는 허무라는 용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허무주의운운은 불교에 대한 몰이해입니다.

 

) 깨닫지 못한 범부들

 

          ‘깨닫지 못한 범부들은, 자기 자신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입자(粒子 : 알갱이. 조각. 부분)의 결합으로 태어난 기적의 산물(産物)이자

       실체(實體)이며,

          태어난 후 아니 태어나기 이전부터

       쉼 없이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자기동일성(自己同一性 : 예컨대, 5세 때의 자신과 50세 때의

       자신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고

       동일인임을 자각거나, 혹은 기억상실증에 걸려도 나를 아는 타인이

       동일인임을 공인해 주는 것과 같은 성질)이 있음을 

 

       의심 없이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겁의 시간 속에서 찰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짧은 생을 살다가

       어느 날

       홀연히 연기처럼 안개처럼 스러져가니

       인간의 삶은 참으로 허무하고 또 허무하기가

       그지없습니다.

       허무주의가 아니고 그냥 허무입니다.

 

       그런데, ‘제법무아사상은 이와 같은 실체로서의 찰나의 삶마저 부인하니

         ‘개또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소리 지르는 범부의 입장에서는

       그저 허무감만 더해질 뿐입니다.

 

[4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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